3 minute read

이 이야기는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트위터(현 X)는 일론 머스크의 인수 이후 언제 서비스가 없어질지 모르니 그동안 쓴 글을 백업해놔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Thread 단위로 긴 글을 많이 쓴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140자 제한이 있다보니 140자씩 끊어서 글을 써놨으니 백업할 때도 이를 하나하나 복사해서 붙여넣는 방식으로 백업을 해야만 원하는 순서대로 백업을 할 수 있더라구요.

그 이전에는 핀터레스트 gif 지원 중단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건 2021년의 일인데 핀터레스트가 갑자기 gif 지원 중단을 발표합니다. 소위 말하는 ‘움짤’을 만드는 많은 사람들이 핀터레스트를 아카이브 겸 백업장치로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급하게 전부 다시 백업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제 친구중 당사자가 있었고, 움짤 하나하나 원본 사이즈 주소를 클릭해서 오른쪽클릭, 저장하는 것을 옆에서 보던 저는 방법이 없앨까 구글링을 하다가 핀터레스트 사이트 구조에 맞춰서 조회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이미 깃허브에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fork 받아서 수정해 보드별로 자동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exe로 말아 배포했습니다. 참고로 제 친구는 1500개의 움짤을 가지고 있었고 자동으로 다운받기만 하는데도 2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동으로 했으면 얼마나 오래 걸렸을지 감이 오실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관심 없는 내용이었겠지만, 나름 그런 취미를 가지신 분들에게 소소하게 도움이 되어서 뿌듯했던 사건이었습니다.

2022년으로 돌아와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비슷한 프로젝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또 구글링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트위터 아카이브를 다운받으면 이를 파싱해서 최대한 편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가 있더라구요. 이거를 포크받아서 원하는대로 스레드를 백업할 수 있는 기능만 남겨서 exe파일로 말아 배포했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소소하게 친구의 친구 이렇게는 사용하고 감사인사도 받았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어요. 그리고 2년이 지나자 점점 안되는 기능들이 생기는지 원래는 되었던 기능들(예를들면 이모지가 들어간 글의 처리)이 안된다는 문의사항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부터 안되었던 기능들의 추가 지원 문의도 있었구요. 그런데 당분간은 할 의지가 없었어요. fork를 받은 원본 프로젝트도 더이상 관리가 되고있지 않은 상태였고 저 스스로도 의지가 조금 부족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해당 글의 조회수 및 문의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떤 분이 지난 6월 이것을 배포한 글을 발굴해서 올리신게 바이럴을 탄거에요. 블로그(정확히는 포스타입) 사이트에 간만에 로그인했다가 빨간 알람의 갯수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의 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러면 안되는 기능들 빨리 고쳐야 사람들이 편하게 쓸 것 같은데… 근데 내가 지금 그거 코드를 다시 볼 시간이 없는데…’

그 때 문득 ‘이거 챗GPT한테 시키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2년 사이에 챗GPT가 나와서 많은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고, 저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개념을 알기 시작했으며, 애초에 저 작업은 근본적으로 json 파일의 각 필드들을 데이터에 맞춰서 재정렬하는거라서 챗GPT가 잘할 것 같았거든요. 그 생각이 머릿속에 든 순간 다시 아카이브 파일을 신청하고, 다운로드 가능하자마자 집에 가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만에 가능한 것을 확인해서 ‘하는 방법’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다시 올렸어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겠죠? 네 맞습니다. 파일이 크고 많은 사람들의 경우는 토큰 갯수 이슈가 있겠구나 싶은 것이었어요. 실제로 해당 글에는 두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한분은 파일의 텍스트가 너무 많다고 실패하셨다는 내용이었고, 다른 한분은 무료버젼으로는 실패했는데 유료버젼으로 성공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근데 그런 생각도 드는거에요. json 파싱 하자고 챗GPT 유료 결제까지 해야하나? 또 프로그램을 말아주면 되지 않을까? 이왕이면 좀 편하게요. 왜냐면 기존에 exe로 하던 방법은 Mac유저 용으로 파이썬 돌리는 방법도 따로 설명했고 이렇게 이원화 되는게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또 어느날 퇴근길에 머릿속에 불현듯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차피 간단한 작업인데, 백엔드 말고 그냥 브라우저의 컴퓨팅 파워로 충분하지 않나? 물론 저는 프론트엔드의 ㅍ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것도 챗GPT가 알려줄 것 같은거에요. 바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위의 작업을 했던 내역을 꺼내서 코드로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

백엔드가 필요하게 주길래 백엔드 없애달라고 요구합니다.

2

실행환경이 필요하잖아요? 실행환경도 떠먹여달라고 해봤습니다.

3

배포를 해야지 남들도 쓸거 아니에요? 배포하는 법도 당당히 요구해봅니다.

4

덕분에 짜잔, 누구나 접근해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페이지 하나가 완성되었습니다. 코드 한줄 안짜고도요. 내친김에 저도 해보고싶어했던 ‘페이지에 광고 달기’도 한번 해보았습니다. 카카오 애드핏 정말 순식간에 심사가 완료되더라구요? 좋은 세상이야…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건 아니기때문에 수익을 기대하고 있진 않습니다만.

결론적으로, 관심만 있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매력을 확실히 느껴버려서 요새 퇴근 후에는 이것저것 챗GPT랑 열심히 놀고있습니다. 뭐 또 만들어볼거 없나 두리번거리면서요. 인터넷에 ‘챗GPT로 할 수 있는 업무 꿀팁 5가지’ 이런거 너무 많이 돌아다니지만, 꼭 엄청나게 생산적이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때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놓고 보다 만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강의도 마저 들어야겠어요. 이번 과제는 아마 2024년의 가장 뿌듯한 일로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