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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 아마 올해가 끝나도 손에 꼽지 않을까. 항상 생각했던 건 기술로 괴물이 되지 않을 것. 근데 이게 간단한 게 아닌 게 대놓고 악은 드라마에서만큼 흔하지 않다. 진짜 무서운 건 선을 가장했지만, 사람들을 옭아매는 기술. 컨베이어 벨트가, 기계가 들어간 공장이 진짜 무서운 건 기계가 사람의 속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기계의 속도에 맞추게 되어서인것 같다. 그걸 따라가지 못하면 사람이 비난받고, 거기에 맞춰서 평가되고.

이 책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공유 경제의 문제점을 다 보여준다. 내가 겪어본 건 우버와 에어비앤비 정도지만.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것이 텍스트로 쓰여있어서 맞아, 맞아 하면서 읽게 되는 쾌감이 상당하다. 사실 가장 많은 문제가 있는듯한 테스크 래빗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상황이 충분히 설명되어있어서 문제점을 느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NC소프트에서 유니버스를 런칭할 때 위화감을 느꼈다. 글로 표현하지는 못했는데, 한 한 달쯤 후에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봤던 AI를 이용해 목소리를 합성하는 기술은 항상 수단으로써 사용되었고 인격이 부여되지 않았다. 그런데 유니버스에서 제공하는 AI는 특정 사람을 카피한다. 사람을 카피하는 것 그 자체를 목표로 한다. 기술이 사람을 그대로 따라 해도 되는 걸까. 이것도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술이 선을 넘어버린 건 아닐까. 그래도 되는 걸까. 기술이.

정세랑의 피프티피플에는 세상의 거의 모든 안전 법들은 유가족이 만든 거라는 내용이 나온다. 공유 경제가 파고든 틈도 그렇다. 금융도, 숙박도, 교통도 하나하나 법이 제정되었던 역사가 있다. 구태의연한 규제를 격파한다고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규제를 해결한다기보단 회피한다에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 같기 때문에.

괴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기술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괴롭히는 거 말고.

아 그리고 번역이 진짜 좋다. 앞부분 읽으면서 이미 놀라서 번역가분 이름 확인해서 검색까지 해봤었다. 약력을 보니 처음부터 번역을 꿈꾸셨던 분 같다. 앞으로 좋은 번역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 예를 들어 만약 이게 정말로 사업가가 될 절호의 기회라면 왜 노동자들은 긱경제에 종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가? 노동자들이 가족과 친구에게 우버 기사로 일하거나 태스크래빗으로 남의 집을 청소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데서 무엇을 엿볼 수 있는가? 이게 진정한 ‘공유’의 경제라면 왜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지는가?
  • 그리고 학계에서는 리프트가 우버만큼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소비자의 ‘공유’욕구를 지나치게 강조”했으나 정작 “소비자는 기업이나 다른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과 편의성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꼽았다.
  • 그리고 “호스트가 100% 만족할 때만 예약을 수락할 수 있도록 신뢰와 안전을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안심’과 ‘100% 만족’을 위해서는 호스트가 집을 빌려줄 사람을 엄선해야 한다. 다시 말해 투숙객을 걸러낼 책임이 호스트에게 있다.
  • 공유경제는 탄력성 없는 업무 환경, 인간적 교류 약화, 불평등 심화, 부실한 사회안전망 등 많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포장되곤 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보면 긱경제가 위험과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를 비롯해 미국에서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긱경제는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기보다는 신기술로 포장했을 뿐 실상은 노동자 보호장치가 부족하고 보상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이른바 초기 산업사회와 같은 시스템에 노동자를 종속시킬 뿐이다.
  • “우리가 플랫폼에서 일하다가 사고가 났으면 당연히 플랫폼이 우리를 도와주는게 도리”
  • 경제 사정과 별개로 의뢰인의 형점과 후기에 따라 앞으로의 고용 여부가 달린 노동자는 범죄의 소지가 있는 의뢰를 쉽사리 거절하지 못한다.
  • 자신이 불법적인 일에 끼어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가 어렵다. 그리고 범죄를 눈치챘을 때는 저항하기보다 모른 척하는 게 덜 위험할 수 있다.
  • 우버는 허락보다는 용서를 구하고, 법을 지키기보다는 과태료와 벌금을 내는 게 쉽다는 식의 경영 행태로 악명이 높다. (…) 그러다가 우버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당국은 사실상 우버의 영업을 허용하기 싫어도 허용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 ‘하인’이라는 말이 조가 고객을 상대할 때 겪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하인은 집안의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직업군이 가혹 행위를 목격함녀 신고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하인 경제에서는 입단속이 우선이다.
  • 주류 노동시장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요구되는 일일수록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더 큰 보상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 정신과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도 더 크다.
  • 긱경제도 노동자를 디지털 플랫폼에서 노동력을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영업자로 만든다. (…) 이 새로운 경제는 노동자가 교육을 받고 인맥을 넓혀서 스스로 시장 가치를 키울 것을 요구한다.
  • 내가 면담한 노동자 가운데 기업 의뢰인에게 고용됐던 사람들은 번듯한 기업이 보통 여러 보호장치를 제공하는 종업원에서 시킬 많나 육체 노동이나 서비스 노동을 자신들에게 시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 그 원인 중 하나는 이들 공유경제 기업이 언어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공유’라는 말은 많은 죄악을 은폐한다. 마찬가지로 이 기업들을 ‘기술기업’이라 부르는 것도 사회계약을 무시하기 위한 수법이다.
  • “기술업계에서 착각하는 게 있어요. 아무 데나 신기술을 갖다 붙이면 유니콘이 될 거라는 [생각이요]. 집 청소 서비스처럼 실생활에 밀착된 사업에 기술적인 요소를 넣으면 당연히 10억 달러짜리 사업이 되는 줄 알아요. 그런건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아니고 소프트웨어도 아니에요. 서비스 플랫폼이죠. 기술 사업이 아니라고요. 엄밀히 말해서 기술은 부차적인 요소죠.”
  • 공유경제 플랫폼은 기술 사업이나 온라인 중개소라는 딱지만 붙으면 무슨 일이든 해도 된다는 허가증이라도 발급받은 것처럼 여긴다.